투자자문업계는 구조조정 중…대형사(브레인·창의) 떠나고 특화자문사(삼호SH·쿼드) 두각
“투자자문업 종사자들에게 이번 겨울은 어느 해보다 혹독할 것 같다.” 한 투자자문사 대표의 말은 업계가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내 일부 상장사 주가를 좌지우지했던 자문사의 위세는 사라진 지 오래다. 지난 9월 대신자산운용이 업계 5위 한국창의투자자문을 인수한 것은 구조조정과 합종연횡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한국창의투자자문은 2010년 설립 때부터 화제를 몰고 온 회사였다. 미래에셋 디스커버리펀드로 유명한 스타 펀드매니저 서재형 대표와 ‘족집게’ 투자전략가로 명성을 쌓은 김영익 대표가 손을 맞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여의도에 회자되기 충분했다. 개인 명성과 자문형 랩어카운트 열풍이 맞물려 수탁고가 한때 1조5000억원까지 불어났다. 그러나 장기 투자를 약속했던 투자자들이 증시 하락에 불안감을 느껴 자금을 급히 회수하자 설립 2년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서 대표가 대신자산운용 CEO에 부임하는 등 한국창의투자자문의 전 임직원이 그대로 자리를 옮겼지만 ‘창의’라는 사명은 불명예스럽게 남게 됐다.
불명예 퇴진은 아니지만 업계 1위 브레인투자자문도 지난 9월 자산운용사로 전환하고 업계를 떠났다. 브레인투자자문을 세운 박건영 사장은 강력한 모멘텀 투자(시장 변화가 생길 때 빠르게 매수·매도를 결정하는 전략)로 ‘7공주’ ‘차화정’ 등의 유행어를 양산했던 인물. 그는 헤지펀드 시장 진출을 표방하며 ‘자문사’ 대신 ‘운용사’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업계에서는 “박건영 사장이 자문업계의 어두운 미래를 내다보고 현명하게 발을 잘 뺐다”고 판단한다.
적자 80%…10여곳 매물 소문 대형사 2곳이 업계를 떠나며 자문업계는 더욱 술렁거리는 분위기다. 올해 들어 특히 ‘어느 자문사가 매물로 나왔다더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실제 몇몇 자문사는 인수합병(M&A)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0명 내외의 소규모 자문사 인력 조정 얘기도 꾸준히 들린다. 그도 그럴 것이 각종 수치가 형편없이 추락한 업계 사정을 말해준다.
금융감독원이 올 1분기 자문사 152개에 대한 실적을 집계해보니, 영업수익은 59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5개사, 1187억원) 대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350억원 흑자를 냈지만 올해 211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 6월 말 기준 투자자문사의 총 계약고는 23조3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조원 가까이 줄었다. 적자 회사는 크게 늘었다. 전체 자문사의 80%가 넘는 125개사가 적자를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곳 늘어났다. 반면 순이익을 기록한 회사는 27개에 불과했다.
리딩·KDB대우증권 자문사 지분 정리 투자자문사 영업난이 이어지면서 금융위원회는 자문사 퇴출 카드를 꺼내들었다. 금융당국은 30개 이상의 투자자문사를 솎아내겠다는 방침이다. 굳이 금융당국의 강제적인 조정이 아니더라도 업계 내부에서 이미 구조조정과 합종연횡이 진행 중이다.
리딩투자자문의 최대주주인 리딩투자증권(지분 90% 보유)은 지난해 11월 공식 출범한 리딩투자자문을 1년 만에 정리한다. 리딩투자자문은 운용자산을 투자자에게 모두 돌려줬다. 매각을 우선 고려하되 여의치 않으면 청산한다는 방침이다.
KDB대우증권도 최근 엠엠파트너스투자자문 보유지분 16% 전량을 매각했다. 엠엠파트너스는 지난해 4월 해외 주식·파생상품 투자, 헤지펀드 스타일 투자에 특화된 자문사를 표방하며 설립됐지만 실적이 저조했다.
중소 투자자문사인 마루투자자문은 지난 8월 KG제로인펀드투자자문 주식 전량을 인수했다. 마루투자자문은 제로인의 설립자인 김성우 대표가 세운 회사. KG제로인펀드투자자문의 모기업이 제로인이라, 결국 김 대표가 자신의 회사를 되찾은 셈이다.
케이로드투자자문도 최대주주가 디지웨이브에서 백정이 씨로 바뀌는 등 지배주주의 변화도 엿보인다.
삼호SH ‘바이오’, 쿼드 ‘중소형주’ 특화 투자자문사 대표들은 “자문사가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만의 색깔을 갖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 대형 자문사와 영세 자문사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과 달리 특화 자문사는 위기 때 자리매김에 성공했다. 대표적인 곳이 삼호SH투자자문이다.
최남철 삼호SH투자자문 사장(최고운용책임자)은 ‘최바이오’라고 불릴 만큼 바이오업종 분석에 정통하다. 실제 바이오·헬스케어·제약주에 투자해 좋은 성과를 냈다. 이들 업종은 경기 민감도가 낮아 시장이 출렁일 때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인다. 최 사장은 “중소형 자문사는 남들이 삼성전자를 매수한다고 따라 샀다가 파는 전략으로는 결코 차별화를 할 수 없다. 규모가 작은 음식점이 한두 개 메뉴로 승부해야 성공하듯 자문사도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호SH투자자문은 씨젠(진단), 셀트리온(바이오시밀러) 등 헬스케어주에 투자하고 줄기세포와 신약, 의료장비, U-헬스(유비쿼터스 헬스) 관련 종목을 눈여겨보고 있다.
쿼드투자자문은 중소형주의 강자다. 자문형 랩 내에 포함되는 25개 종목 가운데 30~40%는 중소형주로 가져가는 운용 전략을 세웠는데 시장 전략과 맞아떨어졌다. 김정우 쿼드투자자문 대표는 “철저하게 종목 중심으로 분석해 기업을 찾는 데 주목한다”고 밝혔다. 기업이 속한 산업이 어떤 상황인지 주목하고 업종 안에서 기업이 차지할 역할이 커질 종목을 고른다. 현재 관심을 두고 있는 쪽은 ‘싸이 효과’와 원자재 관련 주식이다.
500억원대 운용자금으로 크지는 않지만 그로쓰힐투자자문도 주목받는다. 김태홍 그로쓰힐투자자문 사장은 최근 3개월간 11% 수익률을 냈다. 랩어카운트 시장의 40%를 장악한 삼성증권이 최근 계약을 맺은 곳이기도 하다. 김태홍 사장은 브레인자산운용,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을 거쳤다. 그는 자체 개발한 경제지표로 시장을 점검하고 업종을 선택한 뒤 종목을 고른다. 중소형주를 30% 정도 담고 시장 상승과 하락을 헤지하기 위해 포트폴리오 일부를 인버스 상장지수펀드(ETF)와 레버리지 ETF로 채웠다. 7월에는 랩을 출시하면서 바구니에 자동차·타이어주와 여행주를 담았다. 파라다이스와 하나투어, 모바일 게임주에 투자해 톡톡히 수익을 올렸다.
채권·헤지 등 전략도 각양각색 지난 2007년 설립된 타임폴리오투자자문은 변동장에 강하다. 시장 변동성과 관계없이 절대수익을 낼 수 있는 헤지 전략을 쓰는 게 적중했다. 황성환 타임폴리오투자자문 사장은 “시장 변동성을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며 “앞으로도 롱쇼트와 절대수익 전략으로 승부를 걸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룸투자자문은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과 푸르덴셜자산운용에서 주식운용을 총괄했던 조세훈 대표가 설립했다. 그는 종목 발굴에 탁월한 시장 플레이어로 정평이 나 있다. 한국투자증권에서 운용한 랩은 올 들어 30% 가까운 수익률을 기록하며 시장의 관심을 받았다. ‘가치투자’ 전문 자문사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VIP투자자문은 7년 준비 끝에 해외 사모투자펀드를 선보이기도 했다. 김민국·최준철 VIP투자자문 공동대표는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해외 저평가 주식을 발굴하는 게 차별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설립된 국내 최초 채권 전문 투자자문사 한국채권투자자문도 눈길을 끈다. 김형호 한국채권투자자문 대표는 “내년부터 자문업계 영역이 본격 확대될 텐데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 자문형 랩 일변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자문사 보릿고개라지만 신규 자문사의 출사표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창훈 전 푸르덴셜자산운용 대표는 서용원 전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장과 손잡고 자람투자자문을 열었다. 전통적인 주식투자 전략에 롱쇼트 전략 등 절대수익추구 전략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원종준 전 브레인자산운용 주식운용팀장도 독립해 라임투자자문을 열었다. 역시 절대수익추구 전략을 쓰겠다고 밝혔다. 브레인 출신으로는 김태홍 그로쓰힐투자자문 사장에 이어 2번째 독립이다. 석유화학산업 투자에 특화한 케미칼투자자문, 선물옵션 재야고수로 유명한 파생상품 전문가 김진완 대표의 코리아투자자문도 자신만의 색깔로 승부를 건다.
잠깐용어 *자문사
투자판단을 조언하고, 고객으로부터 자금을 받아 운용한다. 공모펀드를 만들 수 없고 투자자 이름으로 운용한다. 조언만 하느냐 투자일임까지 받느냐에 따라 자본금은 5억~20억원으로 달라진다.
잠깐용어 *운용사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펀드를 만들 수 있고 이를 운용한다. 자본금이 100억원이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681호(12.11.07~11.13 일자) 기사입니다]


